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고둔 사건 (문단 편집) === 일본의 만몽신오로협약(滿蒙新五路協約) 이행 요구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Zhang_Zuolin_in_Peking.png]] || || 1928년 5월 24일, 자신의 관저에 있는 장쭤린 || 1928년 4월, [[장제스]], [[펑위샹]], [[옌시산]], [[리쭝런]]이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국민당의 2차 북벌]]을 거행함에 따라 장쭤린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장쭤린은 정예부대인 3,4방면군을 아들 [[장쉐량]]과 최측근 [[양위팅]]에게 맡겨 펑위샹과 옌시산을 먼저 섬멸하고 장제스의 공격은 방어로 일관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산동을 지키던 [[쑨촨팡]]이 말을 듣지 않았는데다가 산동의 공격이 거세 결국 전선이 붕괴되고 베이징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 제국]]은 중국 침탈의 야욕을 노리고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의 제국주의적 침투를 행하고 있었다. 일찍이 일본은 [[궈쑹링]]의 [[반봉사건]] 때 궁지에 몰린 장쭤린을 원조하는 대가로 장쭤린과 거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장쭤린은 그 전부터 일본과 [[미쓰야 협정]]을 맺는 등 일본과의 연계가 강한 인물이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심복이었던 [[궈쑹링]] 등으로부터 친일 매국노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장쭤린은 일본의 지지는 얻으려 했어도 [[한간|일본에 맹목적으로 굴종하면서 그들의 모든 편의를 들어주는 인물]]은 아니었고 만주의 타통철로 부설을 놓고 대원수가 된 이후로 일본과 지속적으로 충돌해왔다. 일본은 이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국민당의 2차 북벌이 개시되고 중국이 혼란에 빠지자 이를 틈타서 다시 침투하기 시작했다. 우선 혁명적인 국민당을 싫어했던 일본은 [[제남 사건]]을 일으켜 국민당을 압박하고 북벌을 방해했으며 장쭤린이 궁지에 몰린 틈을 타서 5개 철도 건설 등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 1927년부터 만철에서 장쭤린에게 요구했던 것으로, 장쭤린이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받아 만철 노선 확장과 지선을 위해 북만주에 길회선([[길림]]-[[회령]]), 연해선(길림-해림), 길오선(길림-오상), 장대선([[장춘]]-대뢰), 조색선(조남-색륜) 등 5개 철로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이러면 일본의 만주 진출이 매우 용이해진다. 장쭤린은 이에 대해 폭탄을 안는 것과 같다며 반감을 표했으나 일본은 장쭤린이 이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장제스를 지지하겠다고 위협했다. 장쭤린은 큰 위기를 느끼고 이 논의를 최종결정이 아닌 예비회담으로 할 것이며 발표를 미루자고 했다. 이러자 만철 총재 야마모토 조타로는 직접 담판을 짓기 위해 베이징으로 장쭤린을 찾아왔다. 장쭤린의 심복 양위팅이 5개 철로 건설안은 대원수라도 혼자 독단할 수 없는 일이라며 무르려 했고 장쭤린은 발뺌할 여지를 남기기 위해 일본이 제출한 만몽신오로협약에 서명 대신에 읽었단 뜻의 열(閱)만 써넣었다. 이후 장쭤린은 온갖 구실로 만몽신오로협약을 이행하지 않았는데 일본이 장쭤린의 약점을 잡아 이행을 요구한 것이다. 일본은 만약 장쭤린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장쭤린의 철수에 남만주 철도를 쓰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장쭤린 이하 길림성 독판 장쭤샹, 길림성 교섭서장 종육 등은 모두 이를 거부했다. 장쭤린은 5월 14일 길림 의회에 보낸 전문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길회선 등의 노선은 본래 [[돤치루이]] 정부에서 외국인이 건설하는 것을 허락한 바 있는데 현재 일본 측이 지난 일을 다시 들추어내고 있다. 그동안 다방면으로 입이 닳도록 재촉하고 다그쳐 바로 교섭을 하자고 하는데 많은 부분의 취소와 일부분의 취소를 희망하고 있다. 결국 장쭤린은 굴복해 5월 13일~15일 사이에 4개 노선에 관해 조인했다. 일본은 원하는 것을 얻게 되자 동북군을 만주로 불러들여 국민당으로부터 만주를 지키려 했다. [[다나카 기이치]] 총리는 전 육상(육군장관)인 [[야마나시 한조]]를 파견하여 장쭤린에게 동북으로 돌아올 것을 종용했다. 장쭤린은 "나는 일본을 위해 일부러 베이징까지 와서 국민혁명군과 싸우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돌아오라니 무슨 소리냐?"라고 이를 묵살했다. 이에 5월 18일 일본은 장쭤린과 장제스 쌍방에 각서를 제출하여 위협했다. 이른바 5.18각서란 것이었다. >전란이 경진 지방으로 진전하고 그 화란이 만주에 미치려 하는 경우에 제국 정부로서는 만주의 치안유지를 위해 적당하고도 유효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의 '적당하고도 유효한 조치'는 5월 16일 각의에서 통과된 '만주지방의 치안유지에 관한 조치'로 국민혁명군이 경진지구에 도착하기 전에 봉천군이 철수하는 것은 인정하나 국민혁명군의 베이징 입성은 저지하며, 국민혁명군과 봉천군이 경진지구에서 교전하거나 두드러지게 가까워진 상황에서 봉천군이 퇴각을 결정하였을 때는 일본군이 개입하여 양군의 무장을 해제한단 것이었다. 주중공사 요시자와가 이 각서를 장쭤린에게 제출하여 조기철수를 설득했으나 장쭤린은 승패는 하늘에 달렸으며 자신이 철수하면 중국은 적화될 것이라고 거부했다. >내가 공산주의를 토벌하는데 만일 실패한다면 중국은 장차 적화가 될 것이다. 중국의 적화는 일본과 관계가 없을 것 같은가? 이에 요시자와는 [[장쭝창]]의 병사들이 제남에서 일본 군병을 살해했으니 책임을 지라면서 만몽의 추가적인 권익을 요구했다. 격노한 장쭤린은 자신의 담뱃대를 집어던졌고 담뱃대는 두조각으로 부러졌다. 장쭤린은 요시자와에 보고도 없었고 조사도 없었던 일이라며 자자손손 얼굴을 들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강력히 거부했다. 그리고 요시자와를 버리고 접견실을 나가버렸다. 요시자와는 몇시간이나 장쭤린 설득을 시도했으나 장쭤린은 거부했다. 5월 18일,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 야다 시치타로가 국민정부의 외교부장 황부에게 장쭤린에게 전해준 것과 같은 각서를 전달했다. >일본은 동삼성의 특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장제스가 이기든 지든, 남군이 산해관을 넘는 것을 불허합니다. 장제스가 만일 출관하고 싶다면 실력으로 나와야 합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